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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의도

어제부터 오늘까지 감정정의 프로젝터인 나는, 나와 같은 인디고 1.0 성향을 지니신 제너레이터 남편과 감정적인 충돌을 무려 두 차례나 후련하게(?) 겪었다. 최근에는 휴먼디자인을 공부하면서부터인지 남편과 이유 없이 감정 충돌이 잘 일어나지 않았던 터인데 지난 스터디에서 '나는 의심 많은 존재이다'라는 바이얼이 동시에 나온 것을 보면 천상 부부이긴 하나보다 ㅎ

1) 나는 의심 많은 존재이다.

-> 남편의 감정 센터 6번으로 연관되어 나온 바이얼이다. 연애 기간이 최소 1주일로,

8일 째 되는 날인가 되던 날에 바로 '혼인 신고'를 한 우리 부부는 이때까지 서로에 대한 건 결혼 한 뒤 알아가도 나쁠 거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식을 치른 뒤 약 2년째인 현재에도 서로의 디자인을 상세히 아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나'는 그때를 생각하면 남편의 디자인과 나의 디자인을 기만했었던 것 같다.

이번 한 주는 그부분을 인정하는 게 꽤 힘들었다. 낫셀프가 튀어나오기 시작한 15년도

에는 지금처럼 순순히 인정하는 항복도가 높지도 않았다. 툭하면 격앙된 분노의 영향으로 '자존심'만은 꾹 잡으려 했고, 내가 괴로웠던 만큼 남편의 디자인도 똑같은 고통을 겪길 바랐던 순간도 정말 많았다. 하물며 '내가 괴로운데 너만 행복하면 다야?'라는 분노로 소리치는 '나'만 존재했었다.

나 못지 않게 가족의 집단 무의식의 영향으로 온전한 인정을 받지 못한 채 매일매일의 삶이 좌절의 연속이었을 거 같던 남편의 인생을 자꾸 접하니 요즘은 찡한 마음에 눈물만 난다. 내 가족의 집단 무의식의 좋지 않은 영향이 너무나도 싫게 느껴졌던 적이 있었던 나였기에 남편의 디자인이 느꼈던 저 바이얼에 대해 폭풍 공감이 간다.

2) 나는 모든 면에서 남보다 뛰어나다

-> 감정 센터 36번 -50 / 최근에 다시 아픔을 호소하기 시작한 남편의 오른쪽 안면 근육에서 나온 바이얼이다. 이는 첫번째 전생에서 나온 것으로 남편의 영혼이 지냈었던 여러 생애 중 이이가 어떤 삶을 살았던 사람인지 알려주는 시초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날 나와 같은 인디고 1.0가 맞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전까지 남편의 디자인은 어쩌면 인디고로 살도록 조건화 되었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약간은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아닌 것으로 판명 ㅎ 얼굴 근육의 오른쪽 반이 아파했었던 것도 내 맘이 애잔한데, 우뇌 활성도가 0이라는 사실까지 접하니 스터디가 끝난 당일은 충격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깨어난 뒤에야 '나, 아파'라고 드러내준 남편의 몸에 고마움 한 가득이다.

-부부 중 한 사람의 깨어남은, 참사랑의 무언가를 느끼게 한다.

1) 나는 의심 많은 존재이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감정정의 프로젝터인 나는, 나와 같은 인디고 1.0 성향을 지니신 제너레이터 남편과 감정적인 충돌을 무려 두 차례나 후련하게(?) 겪었다. 최근에는 휴먼디자인을 공부하면서부터인지 남편과 이유 없이 감정 충돌이 잘 일어나지 않았던 터다. 그리 평화로운 나날을 지내던 우리 부부에게 스터디 수업날이 지난 며칠 뒤부터 감정 센터에서 무언가 조짐이 보이더라.

나의 경우를 저 바이얼과 연관시켰을 때, 3년 전 24살일 때의 내가 나온다. 무의식에 영향을 받았었는지 감이 오는 일이 있었다. 아빠하고 관계된 일이었다. 당시 아빠와 나는 서로의 속에 내재된 분노를 표출하느라 격식 없는 '부녀'의 대화를 나눌 여유가 없었다. 또한 그런 상황, 환경도 아니었다.

그때는 연애 중인 남편과의 사이도 '인정'받고 싶었고, 딸로써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아빠 몰래 대출 받을 수 밖에 없던 간절한 마음도 '인정'받고 싶었었다.

"네가 22살이 되던 때는 너희 엄마가 어렸을 때처럼 아빠 곁을 훌쩍 떠나버릴 것만 같아서 두려웠었어." 낫셀프로 살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아빠의 딸 '사랑법'이 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해가 되고, 진실이란 걸 알았다. 나에 대한 아빠의 진짜 마음을 안 순간, '설마'하고 의심하던 24살의 나는 이미 없었다.

"그만큼 아빠가 다른 세상에 너무 오래 있었나보다."카톡을 읽어서도 놀라움의 연속이었지만 아빠의 인식에 두어 차례 더 놀랐다. 딸을 보며 사랑하는 엄마를 떠올리는 아빠의 순애보에 괜히 또 눈물이 난다.

늘 어렸을 적 서로 사랑은 하셔서 날 낳았던 건지에 대한 의심도 아빠에 대한 의심을 내려놓으니 사라졌다.

2) 당신 자서전의 제목은 무엇으로 할까요?

-> 1300년대에서 펼치고 싶었던 '창조'력을 글로 풀고 싶었던 나의 영혼에게 ' 요즘 많이 묻곤 한다.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뭐야?" 묻는과 동시에 또 말한다. "너는 대체 누구야?"

요즈음 내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나'님이시다. 시간이 지나 이 아이가 펼치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글쓰기를 왜 그리 좋아했었는지도 그 여부가 드러날 것 같다. 그런 생각이 그냥 들었다.

기다리고 있을게, 나님아.

아빠의 디자인이 이토록 사랑스러운데, 엄마는 얼마나 더 사랑스러울까?어릴 적 두분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난 괜히 태어난 걸거야', '제대로 키워주지도 않으면서 왜 낳은 거야'라고 불평하던 나를 허용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긴 시간 사이에서 느낀 게 있다. 내가 내 안의 분노로 징징되던 날 허용하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했듯 나의 부모도 현재 필요한 것은 시간이라는 것을.

. . . 한참 휴먼디자인이란 것도 모르던 작년, 내 낫셀프와의 동행으로(?) 여태껏 살아온 지난 일년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위의 바이얼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알았다. 작년뿐만 아니라 15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나의 낫셀프 포효기. 이제는 휴먼디자인 그리고 트랜서핑의 책을 통해 상황을 통제하려고 애쓰기 않는다. 내 삶이 있는 곳까지 걷는 중이다. 휴먼디자인의 타입별 전략과 내게 맞는 주도권만 지킨다면 7년이라는 탈바꿈의 시간 동안 얻는 경험과 지혜는 많은 유익함을 줄 것이다. 본래 타고난 내 삶의 목적 '포웨이즈'가 기다려지는 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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