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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오늘 샤이함에 대한 이야길 듣다가 불현듯 2013년에 쓴 글이 생각 났어요. 어떻게 해결할지 막막했던 이 문제가 해결되어가다니..정말 상상도 못했고 그게 저의 지금의 현실, 실재가 되어 나타나고 있단게 놀라워요..감자합니다(감동)(뽀뽀)(뽀뽀)(하트)

-- 2013년 어느 날의 일기-- 이 곳에서의 나의 입지는 없다. 그러나 알바생의 자격으로 내가 머무를 만한 공간이 생기게 된다. 알바생의 타이틀을 지니게 되면, 어떠한 일들을 관할하고 참견할 수 있는(중재), 권한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권한이자 , 의무 같은 것이다. 이러한 조건과 여건들을 충족시키면 노동력에 대한 보수, 댓가를 받게 된다. 딱 그 만큼이 내가 이 피시방에서 소유하고, 스스로 누리는 범위이다. 그러한 타이틀 아래에서 나는 편히 숨쉴 수 있다. 그러한 타이틀 뒤에 숨어 나는 이 곳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발화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알바생, 스스로의 입지마저 확고히 하지 못했다. 거기에 따라 누릴 수 있는 권리라든지 자격같은 것도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 알바생의 타이틀을 달게 되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당연" 해 진다. 이 공간에 출입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을 어떤 면에서는 당연하게 여기지 못한다. 그마저도 타이틀에 기댄 결과인 것이다. 이제껏의 나는 스스로의 목소리를 아주 작게 죽여왔다. 이 공간에 내가 머무르는 곳은 당연하나 그것마저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길 서슴치 않았다. 차라리 이런 타이틀을 지닌 경우라면 다행이라 해야 할 것이다. 어떠한 공간에서건 나는 내 스스로가 그 공간에 존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못했다. 타인을 존중하듯 내 스스로를 존중하지 못했다. 그 틈에 섞이어 자연스레 무엇을 주장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못했다. 타인 틈에 섞여 그네와 한 무리가 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못했다. 알바생의 자격으로 주유소에 출입했을 때는 한 쪽에 마련된 의자에 스스럼없이 가 앉았다. 민간인의 자격으로 주유소에 출입했을 때는 자리를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학교에서도 이야기를 나눌 용도로 일시적으로 이루어진 집단이나 그룹에 끼어들 수 없었다. 공식적으로 지정된 석이 아니면 도무지 가 앉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 군락을 이룬 공간에 스스로 자신의 입지를 주장하지 못했다. 어울림 같은 것을 나는 모른다. 다들 주어진 자신의 의자에 끈덕지게 앉아있을 동안, 당연하게 자신의 의자인 것을 알고 소유권을 주장할 동안, 나는 내 스스로가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불편하게 느꼈다. 의자마저도 내던지고 싶어 했다. 의자를 내던지고 그 무대에서 사라지고 싶어했다. 옆 자리에 누군가들이 앉아 있는 것을 견디지 못했고 누군가들이 앉아 있는 곳 한 가운데로 서슴없이 들어가지도 못했다. 어렸을 땐 스스로가 못하는 것을 안 하는 걸로 합리화 하기도 했다. 나는 도무지 내 스스로가 배경이 되는 걸 자연스레 여기지 못했다. 아무도 너 스스로 사라지라 한 적이 없었는데 지우개로 자신을 지워버리곤 했다. 가장 기본적인 "존재 그 자체" 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 의식은 집에서 심어준 것이다. 큰아빠랑 같이 살 무렵에는 고아원에 보낼 거라는 협박을 수시로 들었어야 했다. '나' 는 그 공간에 '당연하게' 있어서는 안되는 존재였다. (그 공간은 울타리라는 느낌을 주지 못했다. 보호받는 느낌을 주지 못했다. 위협과 공격의 장소였다.) 새엄마랑 같이 살 무렵도 여전했다. 새엄마는 끊임없이 집이란 공간에서 나라는 존재를 몰아내고 싶어했다. 나라는 존재가 그 공간에 자리하고 있는 걸 스트레스 받아 했다. 나를 몰아내고 자신이 그 공간을 장악하길 원했다. 나는 거기서 축출 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내가 사라진 뒤에라야 그녀는 편히 숨쉬고 호흡할 것처럼 굴었다. 그녀는 나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자신이 차지하길 원했다. 내가 사라져야 그들은 행복과 평화가 올 것처럼 굴었다. '나' 라는 존재는 그들의 인생을 좀먹는 암덩어리였다. 엄마와 같이 살게 된 때에도 엄마는 끊임없이 집을 나가줄 것을 나에게 요청했다. 괴로워 하며 고함했다. 친척집에서도 나의 존재가 없었다면, 엄마가 편했을 것이라 수근거렸다.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나의 존재는 짐, 더 나아가서 처치 곤란한 폐기물 이었다. 내가 당연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모두 내가 사라져 주길 원했다. 하루종일 사라져 주라 외쳤다. 하루는 모여서 몇 년이 되었고 몇 년은 모여서 십 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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