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 샘을 만난 이 길 위에서 나는 지금 참 위대하고 신기 하다고 밖에 달리 표현 할말이 없다.
처음엔 카페에 내가 정신없이 마구잡이로 쓴 글에 작가 기질이 있다고 댓글을 달아 주셧었다. 그때부터,나는, 내가 초등 고학년쯤에 결석계를 내가 직접 작문으로 썼고 담임선생님이 반 아이들 앞에서 다 읽어 주고는 이게 무슨 결석계냐고 혼내고 아이들이 놀리던 기억이 떠 올랐다. 또한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글짓기 상을 받을때마다 내 마음 속에서 뭔가 잃어버린듯 하거나 뭔가 꿈틀대는 듯만 하던 생각들이 떠 오르곤 했다.
그러다가 지난 겨울 메리 앤 워크샾때 정미경 샘을 처음 실제로 마주쳤고, 그때 그저 살며시 '사무실로 한번 놀러 오세요' 하셨었다
그 후 지난 6월경 처음 사무실에 가 볼 수 있었다.그날 처음의 바이얼을 받고선, 내내 숨막히는 울음만 토해 내다 나왔다 그날 바이얼을 정미경샘이 조용히 내 손에 쥐어 줬을때 다읽는 순간부터 숨막히는 울음이 터짐과 함께 내 57년간 인생의 파노라마가...그날은 정미경 샘도 어떤 말도 질문도 그닥 없이 고요히 그냥 바라만 보았다. 어쩜 그렇게 내 인생의 파노라마가...꺽꺽 대는 울음이 버겁기만 할뿐 신기하다거나 어떻다는 감이란 없었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온 후 다시 무감각 해져 버렸었다. 가끔 그 바이얼을 보면서는 내가 꿈을 꾸었던것만 같았다.
그리고 지난 11월 1day 워크샾을 받게 되었다. 그 워크샾에서는 아주 많은 혼란들을 만났었다. 그 후 한 달 남짓의 나날들 동안 무겁고 무거워서 헉헉만 대었다. 이런 글을 쓸수 조차 없었다. 일을 같이 하는 이가 옆에서 '왜 그리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냐고'...
그리고는 이번 성탄절에 이사한 사무실에서 세션을 다시 받았다. 그러나 이번 세션은 망설이고 망설여졌다. 한달 남짓 동안의 무거움과 버거움이 계속되어 질것만 같아 두려웠다. 그리고 내 안의 그 파노라마들을 정미경 샘에게 보여 질까봐 더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세션으로는 삶아 있음에 너무나 감사함을 체험 하게 되었다. 모든것들이 보여지고 분간이 되어 간다. 아마도 이대로 가면 꿈이 이루어 질지도 모르겠다. 세션에서 나온 바이얼들과 바이얼에 따른 정미경 샘와의 대화는 정말이지 신기 하기도 하고 위대함이 느껴진다. 이대로 가면, 내 지난57년 인생과 세상을 진짜로 마주하고 남은 앞으로의 인생과 세상을 마주하여 나아 가 질 듯하다.
반복하여 나온 '나는 긍정적인 존재이다' 바이얼. 지난 11월 정미경샘이 처음 내 손에 쥐어 준 때에는 대화가 깊지 않았다. 그러나 한달 남짓 기간동안에 세상에서 체험한건 내가 아무 일이나 다 할수 있다는 것이었다. 언제나 그렇게 살았으면서도 나는, ' 내가 못나고, 틀리고, 나쁘고, 할줄 아는게 없고, 아무것도 아는게 없고, 더럽고...한 존재로만 인식 해왔다. 그 삶이란...마치...모든것이 무채색으로서 블랙홀로 빠져 버렸다. 내게는 내 안도 밖도 괜찮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더 억울한것은 나의 세 자녀들을 그렇게 나의 블랙홀로 집어 넣어 버리는 것이엇다. 세 자녀가 무엇을 해와도 나는 무감각이었고 그 아무것도 꿈을 꾸는 것에 불과 했었나? 아니 그냥 턱턱 숨이 막히거나 숨을 쉬는 것 조차 꿈 속 같은 느낌? 나와 내 세 자녀들을 그렇게 내가 인식 해버리는 것은 정말 죽음 같은 삶이었다. 그래서 그날 처음 '나는 긍정적인 존재이다' 바이얼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라고 했었다.
그런데 이번 세션에서 반복해서 나온 '나는 긍정적인 존재이다' 앞에서는 내가 말문이 트여 버렸다. '나는 이 세상 어디에 갔다 놓고, 어느 일을 맡겨도 다 척척 해 내는 존재였다. 이 뒤바뀐 현실 앞에서는 내가 정신을 차려 올바로 인식할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듯하다. 다른 바이얼 ' 나는 관찰력이 예리한 존재이다' 정말 나는 그러 하였다. 다만 꽁꽁, 깊이 깊이, 안간 힘으로 숨겨 왔을 뿐이었다. 나는 내가 그렇게 한 순간에 모든것을 파악 하여지는게 싫기도 하였으며, 나쁜 존재로 인식 하여왔다.그러는 내가 굉장히 나쁜 존재였다.
또 다른 기가 막힌 바이얼 '나는 열등한 존재이다' 처음엔 그냥 당연히 맞아요 햇다. 그런데 내 말문이 트여서 보니 정말이지 신기하고 믿을수가 없었다. 내 인생이 온통 작은오빠와 관련된 어떤 찰흙 내지 나무랄까 철판으로 세워진 형상인 듯 한 것이 느껴졌다. 온 세상안에서 나는 작은 오빠로 인한 어떤 형상들로 열등한 존재인 듯 한데 '이 형상이 다 허물어지면?'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성적 매력이 없는 존재이다'역시 두번 반복된 바이얼, 꽁꽁 얼은체 50년이 훨 지나버린 내 몸, 마비가 되어 피가 하얀체 굳어 멈춰버린 내 몸과 마주 세워 졌다. 정미경 샘의 공기와 같은 따사로움은 나의 얼음 된 몸을 녹혀가기 시작 하였고ㅠㅠㅠ, 하얀 피를 붉게 되돌려 주기 시작하였고ㅠㅠㅠ, 돌지 않고 멈춘 마비를 돌아가기 시작시켜 주었다ㅠㅠㅠ.(이 눈물은 얼음이 녹아 내리는, 피가 붉어지고 돌아가는 눈물이리라) 내 몸, 아무것도 허용 해주지 않는 내 몸. 나에게 맛난 음식도, 예쁜 옷도, 좋고 편리한 돈도...허용해 주지 않는 내 몸. 나의 예쁜 아이들에게도 그 어느것도 그 아무것도 허용해 주지 않는ㅠㅠㅠ 모든것을 무채색과 무감각으로 바꿔 정지 시켜버린 내 몸.
정미경 샘과의 깊고 깊은 포옹으로 내 몸은 깨끗하여지고, 따듯하여 지고, 경직된 무채색에 색들이 들어와 가고, 경직된 감각이 살아나 가고........
그래서 내가 이 세상 어디에서든 모든 것을 다 잘 하는 긍정적인 존재임이 인식되어 가고, 관찰력이 예리한 존재임을 그만 숨기고 드러내어 가고, 예쁘게 잘 커온, 세상 어디에서도 손색이 없는 나의 아이들임이 분별되어져 가고, 그럼에도 불구 하고 내가 이 세 아이들을 이렇게 키워 내며 살아 남은 '나는 용감한 존재이다' 바이얼 앞에서는 왠지 허탈감이 생기는게 이제 다 내려 놓아도 되겟다는 이제 그만 움켜 쥐어도 되겟다는 인식일까? 아님 '그래 잘 살아 남았어' 하며 올라온 산 밑을 돌아보는 휴식일까?
아님 이제 사랑을 찾아 가야 할 과제가 남았다는 걸까?
'내게 주어진 과제는 무엇인가' 바이얼이? 그리고 '내가 집중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이두 개의 바이얼. 그 전에는 정미경 샘에게 아무런 상호작용조차 할수 없었던 내가 지난 11월에는 '내게는 싹이 없어요' 라고 말을 시작한 내가. 언제나 내게는 그 무엇인가 그 어떤것인가 싹이 없다고만 느껴오던. 이것일까 사랑? 57년의 삶은, 언제나 매일 매일이 아침에 일어나면, 그리고 하루가 저물어도, 밤이 되어도, 학교에 다녔어도, 일을 하여도, 아이를 낳아도, 키워도... 그 무엇도, 그 아무것도 그 어떤것도 ... 내게는 신이 주지도 않았거나 다 파괴 되어 흔적없이 날아가 사라져 버려서. 아무리 해도 만질 수 없고 감이 잡히지 않던... 나는 설명할수 없어서 블랙홀이라고 하는... 내가 집중하고 싶은것, 내게 주어진 과제, 이것들은 사랑이구나 그렇구나.
아 그렇다 사랑이다. 내게 주어진 과제는 정미경샘과 함게 찾은 사랑의 싹을 키워가는 일. 그리고 사랑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은것.
참 신기하고 위대하다. 삶은 참 위대하다.
내가 살아 남은것이 위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내가 살아 남은것이 위대하다. 정미경 선생님! 존재 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우주가! 신이! 저를 데려다 주셔서 감사 합니다. 다음에 또 뵈지요.